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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리의 쓸모찾기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해야 할 일

1. 아빠가 사라진 건에 관하여

내용이 조금 기니 내용을 접어버렸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있었던 것은 나니까 기록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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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의 엄청 푸르던 날, 4시 30분 경 아빠는 갑자기 사라졌다.

아빠가 그렇게 갈망했던 우주로 돌아간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미혼의 딸 두명과 아빠 없인 못 사는 엄마를 놔두고 어쨌든 아빠는 떠났다.

아빠가 증발했다고 해야하나,해야 하나,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 없어지셨다고 해야 하나... 돌아가셨다던가 떠나셨다, 잠드셨다는 너무 슬픈 말이다. (그런 말들은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

1-1. 아빠는 아팠다

아빠는 췌장암 환자였다. 췌장암 판정을 받고도 3년 정도 사셨다. 의사는 기적이라고 했다. 

아빠가 가지고 있던 암덩어리는 3cm가 넘는다고 했다. 

수술을 하기가 싫어서 아빠는 병원에서 도망친 적도 있다. 

처음 증상을 발견한건 나였다. 그 당시 나는 일찍 얻은 사회생활의 쓰고 아픔에 지쳐 집에서 요양 중이었고 아빠의 별로 충실하지 않은 믿음직스럽지 못한 동거인이었다.

아빠는 치킨을 무척 좋아하시는데 치킨집에서 알바하는 나로서는 가끔 맛있는 치킨을 집에 들고 왔다. 

언제인가, 아빠는 너무 피곤하다면서 이상하다면서 그 좋아하시는 치킨을 거르고 침대 밖으로 나오지를 못했다.

그러고 일주일정도 지나니 사람이 엄청 노랗게 되었다.

살면서 그렇게 사람이 노랗게 변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아빠가 점점 노란 사람이 되는 것을 보며 나는 너무 걱정스러워서 "아빠 되게 노래... 왜 점점 노랗지? 병원 가봤어?"라고 하니 경상도의 사나이는 이런 일로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렇지만 경상도 사나이의 딸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내 성화에 못이겨 아빠는 동네의 잘 본다는 내과에 갔다.

"아빠 지금 스폰지밥 같아 엄청 노란색이야" 라고 했던 기억이 있음.

 

 병원에서는 당연하게도 황달이었으며 이곳에서는 진료를 받을 수 없으니 큰 병원을 가라고 했다.

그리고 큰 병원에 예약 해놓고 아빠는 병원에서 탈주를 하는 대 난동을 피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빠 친구분들 중 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했던 분들이 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사라지셨기 때문에 무서워서 안 가신 거라고 했다.

이후 검거된 아빠는 안산 어딘가에 있는 온열치료를 하는 곳에 계셨다. 심지어 검거 후 엄마에게 변명하기 위해 하루하루 나아지는 소변을 모아놓기도 하셨다.

거기서 아빠는 엄마에게 나는 식이조절과 온열치료를 통해 병을 이겨나가겠다라는 통보를 하셨고 엄마는 최선을 다하셨다.

모든 식사를 현미, 채소 위주로 바꾸었고 집에서 요양 중이던 나도 강제로 먹게 되었다. 

아빠는 췌장암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했다. 

사실 철저하게 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하루 3번은 열심히 온열치료를 했다.

 

 1-2. 아빠가 사라지기까지 

사라지시기 하루 전날 아빠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 하필이면 추석 연휴가 지난 다음날이라 사람이 무척 붐볐다.

집에서 계속 앓다가 정신이 드신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생긴 건지 아니면 그냥 병원에 가고 싶으셨던 건지는 모르지만 나를 불러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나는 아빠가 그렇게 자주 갔던(수액 맞으러 종종 가심)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아빠는 큰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운전 미숙(장롱면허+운전대 2일 잡음)인 운전자인 나와 함께 병원에 갔다.

상황이 꼬일대로 꼬였다고 생각 든 건 주차장에는 입구가 없음+ 추석연휴로 인해 진료 보는데 3시간 기다림+의사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대로 통보하다 의사 선생님이 무척 열받은 상태+ 입원하자마자 집으로 가라고 하는 아빠+ 그다음 날 아빠께 가니 왜 빈손으로 오냐며 짜증+ 춥다며 짜증내심+ 낙상= 왜 이러지를 느꼈을 때였다. 보통 심각하지 않으면 간호사가 연락하지 않는다. 아빠는 춥다며 나에게 전화걸어 짜증을 낸 상태였고 나는 집에 가서 짐 챙겨서 나오려고 하는 시점이었다.

아주 심각한지 간호사분이 연락했고 "환자분께서 화장실 가려다 낙상하셨어요. 통증은 느껴지지 않으신다는데 얼른 와보셔야 할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아빠에게 가니 뭔가 이상했다. 아빠는 누워있기 싫다고 일으켜달라고 하셨다. 일으켜 세우고 보니 춥다고 했고 난 내 몸에 붙여놓은 핫팩을 떼서 아빠 등에 붙였다.

그리고 아침에 빈손으로 간게 영 걸려 집에서 배즙을 갈아왔으니 한번 드셔보시겠냐고 했지만 아빠는 싫다고 했다. 

"아빠 넘어진건 어때?" "안 아파 아무것도 안 느껴져" "세게 넘어졌다며" "괜찮고 배즙이나 줘봐라"

갑자기 배즙을 달라고 하시더니 3컵이나 드셨다. 그러고는 "발 마사지 해줘라"라고 하시길래 "뭔 낮에 발마사지를 해요?(원래 밤에 함) "투덜투덜하며 "그래도 아빠가 해달라니까 해야지" 하며 마사지를 했다.

 

"어때요?" "괜찮아 시원해"

 

"여긴요?"

 

아빠가 아주 이상했다. 손이 자꾸 올라가고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이상했다. 눈이 뒤집히고 진짜 이상해서 급하게 간호사를 불렀다. 

 

"아빠가 이상해요 아빠가 눈이 이상해요(라고 했던 것 같음)" 간호사분이 걸어오시다가 아빠 상태를 보고 뛰어오셨다.

"코드 블루!!!"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코드 블루를 처음봤다.

아빠는 숨이 돌아왔다가 나가는 것을 반복했고 눈이 돌아왔다가 나갔다도 반복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나한테 환자분한테 계속 말 걸어주세요라고 했고 정지된 내가 재생된 것처럼 삐그덕거리면서 말했던 것 같다. 

아주 슬프게도 청력이 가장 오래 살아 있어서 환자 놀라지 말라고 계속 말해줘야 한단다.

"아빠 집에 가자"

"아빠 일어나"

이런 말에는 아빠가 진짜 너무 크고 격하게 반응했다. 숨을 너무 어렵게 쉬고 눈도 너무 아파 보였다.

그러다가 그냥 문득 아빠가 괜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괜찮아 아빠 가도 돼 나 괜찮아!" 

그랬더니 아빠가 눈을 꽉 하고 감고 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놀라지 말라고 눈을 감아주신 듯했다.

아빠는 그렇게 사라졌다.

 

실감이 안 났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이 최선을 다해서 아빠의 꼬장에도 꼰대력에도 져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코드 블루에 달려와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진짜 아빠에게 잘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뭔가 내가 너무 감사해서(이미 고장남) 그랬던 건지 아니면 진짜 좋은 선생님이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산소호흡기 계속 걸어두고 아빠를 두겠다고 했다.(모든 기관이 멈출 때까지) 

개인실로 나랑 아빠를 넣어주셨다.

 

그제야 뭔가 실감 났다.

아빠가 꽂고 있었던 것들

 

 아빠가 맞던 수액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2. 대화하세요

온전히 아빠와 계속 있었던 동거인의 입장으로 봤을 때 솔직히 아빠가 사라진 원인은 소통 불분명, 대화 불투명, 대화 불가로 인한 가족들 간의 이해 불가인 것 같다. 

심지어 아빠가 사라지기 한 시간 전 분명히 나와 대화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아팠고 그 당시 나도 아팠으니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빠는 췌장암 축에서도 운이 좋아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사라지시기 한 달 전쯤부터 엄마와 무척 다투셨다. 식이조절을 점점 더 하지 않는 아빠와 그걸 보는 게 답답한 엄마 사이에 불똥이 튄 것이다. 마지막 주에는 진짜 아빠는 무슨 금쪽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 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아빠의 병명과 암의 크기를 왜 안 알려 준 건지 모르겠다.

언니랑 나는 아빠가 없어지고 나서, 그것도 49제를 하고 엄마와 짜장면 먹으면서 그때 겨우 알았다.

아픈 사람은 누구나 응석을 부린다. 아빠도 그랬을 것이다. 물론 경상도 사나이에게는 응석이라는 단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던 것 같다.

엄마랑 아빠는 다퉜고, 결론 나지 않는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이 것을 왜 해야 하는지, 왜 안 하는지에 대해서만 다퉜다.

그냥 아무도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언니랑 나는 아빠가 있었던 , 아팠던 기간 동안 아빠가 환자라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지만 어렴풋이 아빠가 사라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대화를 하지 않았기에 아빠랑 소통이 되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그렇게 묻어놓은 무의식처럼 말이다.

 

솔직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심각하게 아프고 위험하다면 반드시 가족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빠는 아빠 상태를 주기적으로 초음파를 찍으러 갔지만 그 내용 어느 하나도 가족에게 공유해주지 않았다.

아빠가 사라지기 하루 전, 피검사에서의 염증 수치는 72라고 했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건지 나는 체감할 수 조차 없었다.

세상이 우리 가족을 두고 거짓말하는 것 같았다. 믿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믿을 수 없다.(계속 아빠가 사라진 것을 부정하는 상태임)

 

그리고 그 이야기를 경청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아무도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았고, 특히 아빠는 소통이 아예 안 되는 별천지 세상같은 사람이었다.

누구의 말도 들을 생각이 없었고 진짜 이상하게 아빠는 딸들은 아빠의 중대사에 관여해서는 안되는 존재라고 했다. 여자는 남자 말을 들어야 해!라는 이상한 사상이 있어서 솔직히 너무 별로인 아빠이기도 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꼭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도... 언니도 나도 아빠랑 여행 가고 싶었고 맛있는 거 좋은 거 더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제발 자기주장 금지  그냥 듣기

 

3. 비상약 위치 파악

아빠의 병원 탈주 이후 담당 교수님은 아빠를 포기했지만 포기는 못하셨는지(진정한 인류애의 끝판왕이심) 약을 한 보따리 주셨다.

아직도 열받는 게 있다면 아빠가 사라지고 나서 집 정리를 하다 우리가 그렇게 필요했던 항생제가 있었다.

그것도 진짜 몇백 개? 아니 몇천 개가 한 봉지에 담겨있었다.

심지어 3세대 항생제라고 쓰여있었다. 

 

아빠는 이거 먹었으면 그렇게까지 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오한에 나한테 짜증도 안 냈을 거고 솔직히 조금 더 우리 곁에 있었을 것이다.

아빠는 아픈 걸 숨겼고 어느 순간부터는 암환자라고도 부르지 못하게 했다. 그냥 잊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약도 숨겼다.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비상약 위치를 어떻게든 파악해야 한다 

 

우리 아빠 같은 벽창호력 탑티어와 우리 가족 같은 멍청함 탑티어를 누가 제칠지는 모르지만.

참고로 재산 파악은 굳이 안 해도 된다. 어떤 통장에 얼마가 있었는지는 나중에 알려주니까...